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엠마 해밀턴 (문단 편집) === 초라한 말년 === 넬슨이 엠마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을 철회하지 않자 엠마에게 감사편지까지 보냈던 넬슨의 동생 윌리엄 등 넬슨의 친지들은 엠마와 아예 연락을 끊었고, 엠마는 그동안 엠마가 돌보던 넬슨의 조카들의 어머니들, 즉 넬슨의 여동생들에게 의탁한다. 그런데 이 여동생들은 넬슨의 죽음을 애도하고 엠마를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온갖 사치를 부렸고, 엠마는 이 여동생들과 여동생들의 친구, 친지들에게 많은 돈을 준다. 넬슨의 유언은 12월에 읽어진다. 넬슨의 형제 윌리엄은 엠마가 머무는 저택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고 국가로부터 넬슨 백작위를 수여받고 윌리엄의 아들(Horatio/Horace)는 자작위를 수여받았다.[* 윌리엄의 아들인 호레이쇼가 요절하는 바람에 누이인 수잔나 넬슨의 아들인 토마스 볼튼(Thomas Bolton)이 성을 넬슨으로 개성하여 작위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엠마는 넬슨의 저택, 2,000파운드, 그리고 연간 500파운드 연금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넬슨의 저택을 유지하지도 못할 돈이었다. 넬슨은 국가의 영웅이었지만 엠마와 딸을 돌봐 달라는 넬슨의 유언은 거의 무시되었고, 장례식에서 엠마가 노래를 부르게 해 달라는 요청도 묵살되었다. 넬슨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영국 역사상 가장 호화롭게 치러졌다. 국비로 14,000파운드가 들었는데, 엠마는 참가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이때 엠마는 넬슨의 여동생과 조카들과 지내고 있었는데, 동생 덕분에 아무것도 한것 없이 백작이 되고 거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윌리엄 넬슨이 장례식 후 친척들을 완전히 무시한다. 돈을 노리고 달려드는 넬슨의 친척들은 처음에는 엠마를 닥달했지만 엠마는 정말 가진 돈이 없었다. 이 친척들은 유산 상속 진정을 요청하는 편지를 계속 정부 당국에 보냈고, 이가 받아들여서 엠마가 데리고 있던 조카들의 부모인 넬슨의 형제들은 각 10,000파운드씩을 받았다. 더 막장이었던 건 그런데도 자기 자식들은 엠마가 키우라며 엠마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유산 문제가 정리되자 윌리엄 넬슨은 백작으로서 100,000파운드짜리 저택을 산다. 문제는 아까 얘기한 엠마 몫으로 남겨진 연 500파운드의 연금을 이 윌리엄이 가로채고 엠마에게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엠마가 20,00파운드 가량을 쏟아부어 키운 넬슨의 조카들, 그 조카들의 부모들마저도 엠마를 저버렸고, 애정을 담아 키운 넬슨의 조카들마저도 자신을 저버리자 엠마는 우울증에 빠진다. 윌리엄은 엠마에게 상속된 넬슨 저택마저 내놓으라고 협박을 일삼았고, 엠마에게서 지속적으로 돈을 뜯어냈다. 문제는 엠마 역시 낭비벽이 심하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에 [[도벽]]까지 있는 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사기에 몇 번 당하고 과소비도 끊지 못해서 중년기에는 말 그대로 알거지로 살게 된다. 넬슨의 유언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해밀튼 경의 유산이나 넬슨 개인이 준 재산도 꽤 많았다. 그저 엠마의 낭비벽이 엄청난 것이 문제였다.[* 그녀의 일생을 그런 영화 레이디 해밀턴에선 알코올 중독으로 거지가 된 엠마를 그려서 논란이 됐었다.] 그래서 이 와중에도 엠마는 지속적으로 넬슨 저택에서 공연을 열고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엠마에게 관심을 보이던 왕세자 조지 4세를 비롯한 수많은 신사들이 넬슨 저택을 들락날락했지만, 그 누구도 엠마를 도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3년 후인 1808년, 엠마는 15,000파운드라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경매에 붙여진 넬슨 저택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지만 존 패링 경(Sir John Perring)을 중심으로 엠마를 돕던 친지들과 이웃들의 도움으로 다음해인 1809년에 팔리면서 엠마는 빚을 어느정도 청산하게 된다. 하지만 엠마의 낭비벽은 변하지 않았고, 곧 다시 빚더미에 앉게 된다. 1810년, 엠마가 젠트리 계급 남자의 정부(Mistress)로 온갖 저택을 떠도는 동안 항상 같이 있으며 저택에서 하인 일을 하던 엠마의 어머니 카도간 부인(Mrs.Cadogan)이 사망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엠마는 채무로 인해 1811년부터 1812년까지 수감되는데, 이 와중에도 돈을 지불해 가택연금 상태로 딸 호레이샤와 생활한다. 1813년, 엠마는 자기에게 있는대로 추근덕대던 왕세자 조지 4세를 비롯한 후원자들과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한다. 결국 엠마는 넬슨의 유품들을 포함한 자기 소유품들을 모두 경매로 내놓을수 밖에 없었는데, 이 와중에도 계속 호화스런 공연을 벌이며 이제는 이자를 갚기 위해 돈을 융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814년, 더 이상 영국 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던 엠마는 체포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기 딸 호레이샤와 함께 몰래 프랑스 [[칼레]]로 떠났다. 이 때 수중에 딱 50파운드가 있었다고. 여기서도 과소비가 멈추지 않았는데, 고급 호텔에 머물며 후원자들의 돈으로 생활하며 공연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곧 엠마는 과도한 음주, 아메바 성 이질[* 남편 윌리엄 해밀턴도 이 병으로 사망한 걸 고려하면 젊은 시절 나폴리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로 건강이 악화되어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자 작은 집으로 이사했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독한 술과 아편을 복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